'2010/01'에 해당되는 글 10건
- 그 나무 아래로 (삭개오 이야기) | 2010/01/31
- 새로운 시작. (4) | 2010/01/25
- 하나님을 사랑함에 대하여. (2) | 2010/01/24
- Coline Jasson Kayonga | 2010/01/22
- My Identity - Faith (1) | 2010/01/22
- You Alone Can Rescue | 2010/01/19
- His Presence (2) | 2010/01/18
- 친구들. | 2010/01/14
- Glorious! | 2010/01/12
- Passion Conference 2010 | 2010/01/01
그 나무 아래로 (삭개오 이야기) :: 2010/01/31 05:26
한웅재 2nd Step.
그 나무 아래로 (삭개오 이야기)

인생의 마음 그를 지으신 이 앞으로
오래 외로웠던 너의 지난 삶에서 나와
넌 내려오라 넌 내려오라 내게로 오라
사람이 산다는 일은 참으로 이상한 일인 것 같아
얻으려 애써도 결코 얻을 수 없던 무언가
어쩌면 그게 이유일까 내가 이 나무 위에 오른
이대로는 아닌 듯 내 안 멈추지 않는 그리움 그 때...
넌 내려오라 그 나무 아래로
네가 서 있는 그 아픈 삶 내려놓고
마른 풀잎 같던 너의 지난 삶에서 나와
넌 내려오라 넌 내려오라 내게로 오라
수많은 사람들 중에 나는 언제나 혼자였지
많은 걸 가져도 항상 내게 없는 마음 누군가의 마음
넌 내려오라 그 나무 아래로
인생의 마음 그를 지으신 이 앞으로
오래 외로웠던 너의 지난 삶에서 나와
넌 내려오라 넌 내려오라
내려오라 그 나무 아래로
내가 서 있는 그 아픈 삶 내려놓고
마른 풀잎 같던 너의 지난 삶에서 나와
넌 내려오라 넌 내려오라 내게로 오라.
예수께서 그곳에 이르사 우러러 보시고 이르시되
삭개오야 속히 내려오라 내가 오늘 네 집에 유하여야 하겠다 하시니 (눅 19:5)
When Jesus reached the spot, he looked up and said to him,
"Zacchaeus, come down immediately, I must stay at your house toda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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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로운 시작. :: 2010/01/25 14:05
이곳 Southern에서의 4번째 학기.

이번 학기는 5과목, 14학점 4과목 11학점 이다.
Applied Ministry.
History of Baptists. (몸이 안따라줘서 한과목 drop. ㅎㅎ)
Hebrew Exegesis : Joel & Amos.
Greek Syntax.
Systematic Theology 1.
하나님, 저의 학업에 기름 부어주세요.
하나님에 관한 지식이 쌓여갈수록 더욱 겸손하도록, 주님 도와주세요.
육신의 연약함이 학업에 방해되지 않도록, 영육간에 강건케 하여주세요.
이번 한학기도,
오직 주님만 기대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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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을 사랑함에 대하여. :: 2010/01/24 14:00
사랑의 4 단계
제1단계: 자기를 위해서 자기를 사랑하는 단계
사랑이란 자연스러운 인간의 감정이다. 그런데 이 사랑은 하나님께로부터 비롯된다.
그러므로 가장 크고 첫째 되는 계명은 "주 너의 하나님을 사랑하라"는 것이다. 그러나
인간의 본성은 연약해서 하나님보다는 자신을 사랑하게 되고 자기를 가장 먼저 떠받들게
된다. 인간 세계에서는 어디를 가나 사람들이 자기를 위해서 자기를 사랑하게 마련이다.
하지만 이러한 자기 사랑이 너무 지나치면 쾌락을 과도하게 사랑하게 됨으로써 자아 사랑
의 적절한 경계선을 넘어 버리게 된다. 사람들은 너무나 쉽게 영혼의 대적인 탐욕의 노예
가 되곤 한다. 그래서 자기를 사랑하는 일은 이웃을 사랑하라는 계명에 의해 늘 견제되어야
한다. 만일 우리가 자기를 사랑하는 일 때문에 이웃을 사랑할 수 없다면, 우리는 우리의
욕심을 억제해야만 하며 이웃의 필요를 채워 주어야만 한다. 우리가 우리 자신에게서 돌
이켜 이웃에게 나누어 줄 때 우리의 사랑은 균형을 유지하게 된다.
그런데 우리 자신의 필요가 충족되지 않는다면 어떻게 해야 할까? 당신은 당신의 욕구를
충족시키기 위해서 하나님께 의지하겠는가? 하나님께서는 먼저 그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는
자들에게 모든 것을 더해 주겠다고 약속하셨다. 또한 자기의 욕심을 억제하고 이웃에게 필
요한 것을 주는 자들에게 필요한 모든 것을 주시겠다고 약속하셨다. 먼저 그 나라를 구한다
는 것은 죄가 썩어질 육체에서 왕 노릇 하게 하는 것이 아니라, 겸손과 절제의 멍에를 메기
를 더 좋아한다는 것을 말한다.
이웃을 사랑하려면 먼저 하나님이 사랑의 원천이심을 알아야 한다. 이웃을 하나님 안에서
사랑하지 못하고 어떻게 그 이웃을 순수하게 사랑할 수 있겠는가? 하나님을 사랑하지 않고
서는 이웃을 사랑할 수 없다.
제2단계: 자기를 위해서 하나님을 사랑하는 단계
모든 것을 선하게 역사하시는 하나님께서는 먼저 우리를 보호하심으로 축복해 주신다. 그러
면 우리는 아무런 어려움이 없기 때문에 복된 삶을 살게 된다. 그것이 하나님의 은혜인데,
우리는 교만해서 우리가 잘나서 안전하게 지낸다고 생각한다. 그러다가 삶 속에서 재난을
만나거나 풍랑을 겪게 되면 하나님께 돌아와서 도움을 청하며 고난 중에야 그를 의지하게
된다. 이런 식으로 처음에는 우리 자신만을 사랑하던 우리가 비로소 하나님을 사랑하기 시
작하는 것이다. 그 사랑이 비록 우리 자신을 위한 것이기는 하지만 하나님을 사랑하기 시작
하는 것이라는 데 의의가 있다. 우리는 하나님으로 인해서 모든 것을 할 수 있고, 하나님이
없이는 아무것도 할 수 없다는 사실을 알고 있기 때문에 하나님을 사랑한다.
사랑의 제1단계에서는 우리가 우리 자신을 위해서 우리를 사랑한다. 사랑의 제2단계에서는
우리가 우리 자신을 위해서 하나님을 사랑한다. 그 이유는 주로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필요
한 것을 공급해 주시며, 우리를 재난에서 구해 주셨기 때문이다. 그러나 시련과 곤경이 끊
임없이 우리에게 닥치고 그때마다 하나님께서 그 어려움을 이겨내게 하신다면, 아무리 우리
마음이 돌과 같이 단단하게 굳어 있다 해도 그 구원자이신 하나님으로 인해 우리의 마음은
부드러워질 것이다. 그리하여 우리는 우리 자신을 위해서만이 아니라 하나님을 위해서도
하나님을 사랑하기 시작한다.
제3단계: 하나님을 위해서 하나님을 사랑하는 단계
이 단계에 도달하기 위해서 우리는 우리의 필요와 기도를 가지고 끊임없이 하나님께 나가야
만 한다. 그렇게 기도하다 보면 하나님의 은혜를 맛보게 되고, 그러한 체험이 반복되다 보면
하나님이 얼마나 달콤하신 분인지를 깨닫게 된다. 일단 하나님의 달콤함을 맛보고 나면,
우리의 필요에 의해 하나님을 사랑하는 단계를 넘어서서 그야말로 하나님을 순수하게 사랑
하는 단계에 이르게 된다. 그제서야 우리는 이렇게 고백하게 된다. "이제 우리는 우리의 필
요 때문에 하나님을 사랑하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이 얼마나 좋으신 분인지를 직접
맛보고 알았기 때문입니다."
이러한 고백이 시작되면 "네 이웃을 네 몸과 같이 사랑하라"고 하신 둘째 계명을 실천하기가
어렵지 않게 된다. 왜냐하면 하나님을 진심으로 그렇게 사랑하는 자들은 하나님의 피조물들을
또한 사랑하게 되기 때문이다. 뿐만 아니라 하나님의 모든 명령들도 순종하기가 더 쉽게 된다.
그래서 하나님의 명령을 사랑하기 시작하고, 또 그 명령을 기꺼이 준행하게 된다.
이러한 사랑은 무언가를 기대하지 아니하고 사심이 없기 때문에 순수하다. 그리고 말로만 섬
기는 것이 아니라 행동으로도 섬기기 때문에 순수하다. 우리는 사랑받기 때문에 사랑하고,
예수님께서 우리를 돌보시기 때문에 남들을 돌본다.
이러한 단계에 도달하면 우리는 다음과 같이 말할 수 있다. "하나님을 찬양하라. 그는 선하신
분이기 때문이다. 나에게 선하시기 때문이 아니라 하나님 자신이 선하시기 때문이다." 이렇게
될 때, 우리는 우리 자신을 위해서가 아니라 하나님을 위해서 진실로 하나님을 사랑하게 된다.
사랑의 제3단계는 하나님이 바로 그 자신으로 인해서 사랑을 받게 되는 사랑을 말한다.
제4단계: 하나님을 위해서 자기를 사랑하는 단계
하나님을 위해서 자기 자신을 사랑하는 제4단계의 사랑을 체험하는 자들은 복이 있다. 그러한
체험은 좀처럼 갖기 힘들며 체험을 하더라도 잠시 동안만 가능하다. 이 단계가 되면 말할 때
에도 자신이 존재하지 않는 것처럼 자신을 내세우지 아니하며, 자신을 전혀 의식하지 아니하고
온전히 자신을 비우게 된다.
만일 잠시 동안만이라도 우리가 이러한 사랑을 체험하게 되면, 그렇게 하나님만 생각하는
묵상의 상태에서 이기적인 모습으로 다시 돌아오게 될 때 이 세상과 이 세상의 의무에 다시금
얽매이지 않으면 안된다는 것이 얼마나 고통스러운지를 알게 된다. 자기를 내세우지 않다가
다시금 자기를 내세우게 되면, 마치 우리가 죽을 수밖에 없는 상태로 살았던 삶 속으로 다시
돌아갈 때 겪게 되는 것과 똑같은 고통을 겪게 될 것이다.
그러나 이 사랑의 단계에 이르면 하나님과 한마음이 되고, 또 우리의 뜻과 하나님의 뜻이 하
나가 될 것이다. 그래서 "하나님의 뜻이 이루어지기를 원합니다"라는 기도가 우리의 기도가
될 것이며, 우리의 기쁨이 될 것이다. 작은 물 한 방울이 많은 포도주 속에 섞이면 그 자체의
모습은 완전히 없어지고 포도주의 맛과 포도주의 색깔을 띠는 것처럼, 쇳덩어리가 달구어져서
빛나게 되면 그 원래의 모습은 사라지고 불덩어리같이 보이는 것처럼, 그리고 공기가 태양 빛
으로 충일하게 되면 눈부신 빛의 모습으로 바뀌어서 빛 그 자체인 것같이 보이는 것처럼,
자신은 완전히 녹아 없어지고 전적으로 하나님의 뜻에 순복하는 자들의 삶도 그러하다.
우리의 마음과 영혼과 정신과 힘을 다해 이처럼 하나님을 온전하게 사랑하는 것은 우리가 더
이상 자신에 대해서 무기력하게 얽매이지 않고 육신의 욕구에 얽매이지 않게 될 때에 비로소
가능하다. 그때서야 비로소 우리의 영혼이 완전히 하나님을 향하게 된다. 바로 이런 이유 때
문에 우리가 갖고 있는 지금의 육신 속에 그 사랑을 유지하기가 어려운 것이다. 그러나 하나님
께서 기뻐하시는 자에게 그러한 경험을 주시는 것은 하나님의 권한에 속해 있는 것이지 우리
자신의 노력에 의해 얻어지는 것은 아니다.
사랑이란 자연스러운 인간의 감정이다. 그런데 이 사랑은 하나님께로부터 비롯된다.
그러므로 가장 크고 첫째 되는 계명은 "주 너의 하나님을 사랑하라"는 것이다. 그러나
인간의 본성은 연약해서 하나님보다는 자신을 사랑하게 되고 자기를 가장 먼저 떠받들게
된다. 인간 세계에서는 어디를 가나 사람들이 자기를 위해서 자기를 사랑하게 마련이다.
하지만 이러한 자기 사랑이 너무 지나치면 쾌락을 과도하게 사랑하게 됨으로써 자아 사랑
의 적절한 경계선을 넘어 버리게 된다. 사람들은 너무나 쉽게 영혼의 대적인 탐욕의 노예
가 되곤 한다. 그래서 자기를 사랑하는 일은 이웃을 사랑하라는 계명에 의해 늘 견제되어야
한다. 만일 우리가 자기를 사랑하는 일 때문에 이웃을 사랑할 수 없다면, 우리는 우리의
욕심을 억제해야만 하며 이웃의 필요를 채워 주어야만 한다. 우리가 우리 자신에게서 돌
이켜 이웃에게 나누어 줄 때 우리의 사랑은 균형을 유지하게 된다.
그런데 우리 자신의 필요가 충족되지 않는다면 어떻게 해야 할까? 당신은 당신의 욕구를
충족시키기 위해서 하나님께 의지하겠는가? 하나님께서는 먼저 그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는
자들에게 모든 것을 더해 주겠다고 약속하셨다. 또한 자기의 욕심을 억제하고 이웃에게 필
요한 것을 주는 자들에게 필요한 모든 것을 주시겠다고 약속하셨다. 먼저 그 나라를 구한다
는 것은 죄가 썩어질 육체에서 왕 노릇 하게 하는 것이 아니라, 겸손과 절제의 멍에를 메기
를 더 좋아한다는 것을 말한다.
이웃을 사랑하려면 먼저 하나님이 사랑의 원천이심을 알아야 한다. 이웃을 하나님 안에서
사랑하지 못하고 어떻게 그 이웃을 순수하게 사랑할 수 있겠는가? 하나님을 사랑하지 않고
서는 이웃을 사랑할 수 없다.
제2단계: 자기를 위해서 하나님을 사랑하는 단계
모든 것을 선하게 역사하시는 하나님께서는 먼저 우리를 보호하심으로 축복해 주신다. 그러
면 우리는 아무런 어려움이 없기 때문에 복된 삶을 살게 된다. 그것이 하나님의 은혜인데,
우리는 교만해서 우리가 잘나서 안전하게 지낸다고 생각한다. 그러다가 삶 속에서 재난을
만나거나 풍랑을 겪게 되면 하나님께 돌아와서 도움을 청하며 고난 중에야 그를 의지하게
된다. 이런 식으로 처음에는 우리 자신만을 사랑하던 우리가 비로소 하나님을 사랑하기 시
작하는 것이다. 그 사랑이 비록 우리 자신을 위한 것이기는 하지만 하나님을 사랑하기 시작
하는 것이라는 데 의의가 있다. 우리는 하나님으로 인해서 모든 것을 할 수 있고, 하나님이
없이는 아무것도 할 수 없다는 사실을 알고 있기 때문에 하나님을 사랑한다.
사랑의 제1단계에서는 우리가 우리 자신을 위해서 우리를 사랑한다. 사랑의 제2단계에서는
우리가 우리 자신을 위해서 하나님을 사랑한다. 그 이유는 주로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필요
한 것을 공급해 주시며, 우리를 재난에서 구해 주셨기 때문이다. 그러나 시련과 곤경이 끊
임없이 우리에게 닥치고 그때마다 하나님께서 그 어려움을 이겨내게 하신다면, 아무리 우리
마음이 돌과 같이 단단하게 굳어 있다 해도 그 구원자이신 하나님으로 인해 우리의 마음은
부드러워질 것이다. 그리하여 우리는 우리 자신을 위해서만이 아니라 하나님을 위해서도
하나님을 사랑하기 시작한다.
제3단계: 하나님을 위해서 하나님을 사랑하는 단계
이 단계에 도달하기 위해서 우리는 우리의 필요와 기도를 가지고 끊임없이 하나님께 나가야
만 한다. 그렇게 기도하다 보면 하나님의 은혜를 맛보게 되고, 그러한 체험이 반복되다 보면
하나님이 얼마나 달콤하신 분인지를 깨닫게 된다. 일단 하나님의 달콤함을 맛보고 나면,
우리의 필요에 의해 하나님을 사랑하는 단계를 넘어서서 그야말로 하나님을 순수하게 사랑
하는 단계에 이르게 된다. 그제서야 우리는 이렇게 고백하게 된다. "이제 우리는 우리의 필
요 때문에 하나님을 사랑하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이 얼마나 좋으신 분인지를 직접
맛보고 알았기 때문입니다."
이러한 고백이 시작되면 "네 이웃을 네 몸과 같이 사랑하라"고 하신 둘째 계명을 실천하기가
어렵지 않게 된다. 왜냐하면 하나님을 진심으로 그렇게 사랑하는 자들은 하나님의 피조물들을
또한 사랑하게 되기 때문이다. 뿐만 아니라 하나님의 모든 명령들도 순종하기가 더 쉽게 된다.
그래서 하나님의 명령을 사랑하기 시작하고, 또 그 명령을 기꺼이 준행하게 된다.
이러한 사랑은 무언가를 기대하지 아니하고 사심이 없기 때문에 순수하다. 그리고 말로만 섬
기는 것이 아니라 행동으로도 섬기기 때문에 순수하다. 우리는 사랑받기 때문에 사랑하고,
예수님께서 우리를 돌보시기 때문에 남들을 돌본다.
이러한 단계에 도달하면 우리는 다음과 같이 말할 수 있다. "하나님을 찬양하라. 그는 선하신
분이기 때문이다. 나에게 선하시기 때문이 아니라 하나님 자신이 선하시기 때문이다." 이렇게
될 때, 우리는 우리 자신을 위해서가 아니라 하나님을 위해서 진실로 하나님을 사랑하게 된다.
사랑의 제3단계는 하나님이 바로 그 자신으로 인해서 사랑을 받게 되는 사랑을 말한다.
제4단계: 하나님을 위해서 자기를 사랑하는 단계
하나님을 위해서 자기 자신을 사랑하는 제4단계의 사랑을 체험하는 자들은 복이 있다. 그러한
체험은 좀처럼 갖기 힘들며 체험을 하더라도 잠시 동안만 가능하다. 이 단계가 되면 말할 때
에도 자신이 존재하지 않는 것처럼 자신을 내세우지 아니하며, 자신을 전혀 의식하지 아니하고
온전히 자신을 비우게 된다.
만일 잠시 동안만이라도 우리가 이러한 사랑을 체험하게 되면, 그렇게 하나님만 생각하는
묵상의 상태에서 이기적인 모습으로 다시 돌아오게 될 때 이 세상과 이 세상의 의무에 다시금
얽매이지 않으면 안된다는 것이 얼마나 고통스러운지를 알게 된다. 자기를 내세우지 않다가
다시금 자기를 내세우게 되면, 마치 우리가 죽을 수밖에 없는 상태로 살았던 삶 속으로 다시
돌아갈 때 겪게 되는 것과 똑같은 고통을 겪게 될 것이다.
그러나 이 사랑의 단계에 이르면 하나님과 한마음이 되고, 또 우리의 뜻과 하나님의 뜻이 하
나가 될 것이다. 그래서 "하나님의 뜻이 이루어지기를 원합니다"라는 기도가 우리의 기도가
될 것이며, 우리의 기쁨이 될 것이다. 작은 물 한 방울이 많은 포도주 속에 섞이면 그 자체의
모습은 완전히 없어지고 포도주의 맛과 포도주의 색깔을 띠는 것처럼, 쇳덩어리가 달구어져서
빛나게 되면 그 원래의 모습은 사라지고 불덩어리같이 보이는 것처럼, 그리고 공기가 태양 빛
으로 충일하게 되면 눈부신 빛의 모습으로 바뀌어서 빛 그 자체인 것같이 보이는 것처럼,
자신은 완전히 녹아 없어지고 전적으로 하나님의 뜻에 순복하는 자들의 삶도 그러하다.
우리의 마음과 영혼과 정신과 힘을 다해 이처럼 하나님을 온전하게 사랑하는 것은 우리가 더
이상 자신에 대해서 무기력하게 얽매이지 않고 육신의 욕구에 얽매이지 않게 될 때에 비로소
가능하다. 그때서야 비로소 우리의 영혼이 완전히 하나님을 향하게 된다. 바로 이런 이유 때
문에 우리가 갖고 있는 지금의 육신 속에 그 사랑을 유지하기가 어려운 것이다. 그러나 하나님
께서 기뻐하시는 자에게 그러한 경험을 주시는 것은 하나님의 권한에 속해 있는 것이지 우리
자신의 노력에 의해 얻어지는 것은 아니다.

- 끌레르보의 버나드 저 <하나님을 사랑함에 대하여>에서 발췌
나는 몇 단계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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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line Jasson Kayonga :: 2010/01/22 14:20

목회에만 관심을 가지고 있던 내가
선교에 관심을 가지게 되면서,
타국민 선교를 위해 내가 할 수 있는 일이 무엇인지 고민하게 되었다.
단기선교를 가보고 싶기도 했지만 상황이 여의치 않았고,
선교에 관심만 가지고 있었지 내가 하는 것은 아무 것도 없었다.
그래서 항상 내 마음에 선교를 향한 거룩한 부담감을 가지고 있었다.
그러던 중,
김혜자 씨의 "꽃으로도 때리지 마라" 라는 책을 읽으며,
나의 풍족한 삶과 다른 그들의 삶을 보며,
아프리카 땅을 향한 마음을 품게 되었다.
그리고 이들을 후원할 수 있는 World Vision이라는 단체를 알게 되었고,
적은 돈이지만 그들에게 큰 힘이 될 수 있기에,
나의 작은 선교가 되기를 바랬다.
이 결단 후
그 적은 돈이 나에게 너무 크게 느껴지는 사단의 유혹에 한참을 미루다가
하나님꼐서 내가 섬기는 교회로 이 단체의 목사님을 직접 보내주시는 "은혜"를 허락해주셔서
피하지 못하고 바로 후원을 결정했다. ㅎㅎ
역시 우리 주님. ㅎ


Coline Jasson Kayonga.
내가 후원하는 아프리카 탄자니아에 사는 5살의 남자아이다.
나의 적은 후원이 이 아이와 가족의 필요를 조금이나마 채워지기를 소망한다.
그리고 이 아이의 얼굴에 웃음이 넘쳐나기를.
이 아이와 가족을 위해 기도를 부탁드립니다.
1. HIV and AIDS로부터 안전할 수 있도록.
2. Food, school, medical care 등을 풍족할 수 있도록.
3. 건강하게 잘 자라날 수 있도록.
Jesus said, "...whoever welcomes a little child like this in my name welcomes me." (Matt. 18: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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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y Identity - Faith :: 2010/01/22 01:27
"하나님이 나를 사랑하신다."
내 자신에게 이 진리에 대한 믿음이 없음을 깨달은 후,
나는 내 믿음에 의해 자연스럽게 반응하는 나의 "감정"에 대해 더 깊이 관심을 가지기 시작했다.
내가 말하고, 알고 있고, 믿고 있다고 생각하던 나의 그 믿음이,
사실은 단지 나의 이성적인 동의일 뿐인지,
아니면 그 믿음이 나의 삶을 전적으로 지배하고 변화시키는 진정한 믿음인지에 대한
의구심과 함께 확인해야 할 필요성을 느꼈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나의 수많은 감정 가운데,
자주 반복되는 감정을 하나 발견했다.
그것은 "두려움" 이었다.
실패에 대한 두려움...
그 두려움은 나와, 또 다른 사람들에 대한 것으로,
내가 이루고자 하는 것에 열심으로 한 것에 대한 실패,
다른 사람들을 만족하게 하지 못한 것에 대한 실패의 두려움이었다.
나는 성취감이 강해서,
내가 열심으로 무언가 했을 때 이루는 그 만족감은
내가 무슨 일을 할 때의 큰 원동력이 되곤 했다.
또한 다른 사람들의 기대에 부응하고자,
그들이 원하는 무언가를 위해 열심히 했고,
그들을 만족시켰을 때 나 또한 그것으로 인해 기뻐했다.
물론 이런 성취감과 다른 사람들을 만족시키는 것이 나쁜 것은 아니다.
이것들은 나에게 많은 긍정적인 영향을 주곤 했다.
문제는 이것들이 실패했을 때다.
내가 열심으로 무언가 했는데 실패하여 성취감과 만족감을 느끼지 못했을 때.
내가 다른 사람들의 기대에 부응하고자 나의 상황과 나의 의지와 상관없이
그것들을 이루고자 열심히 노력했는데 그들의 기대에 못미쳐서
그들을 만족시키지 못했다는 좌절감과 죄책감을 느꼈을 때.
이것이 문제인 경우였다.
나는
내가 무언가 이룬 것에 대한 성취감을 느껴야 했고,
내가 다른 사람들을 만족시켜 그들을 기쁘게 해야 했다.
그것이 나의 기쁨이 되었고, 나의 만족이 되었다.
이와 반대되는, 실패는 내게 가장 피하고 싶은 상대였다.
그렇기 때문에,
이것에 대한 실패가 찾아왔을 때,
나의 문제를 발견했을 때,
나는 줄곧 나의 부족함 때문이라 생각하며,
불안감, 답답함, 죄책감에 사로잡혔고,
근본적인 문제를 찾기보다는
나의 행동을 변화시키기에 급급했다.
마치 하얀 도화지에 여러가지 색들이 칠해져서
그 색들을 감추려 다시 하얀 페인트로 마구 덧잎히듯...
이 때 나에게 다가온 질문은.
"실패가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거라면....?" 이었다.
".....................네?"
하나님께서 내게 실패를 원하신다니요.?
하나님께서는 내가 잘되고 복되기를 원하시지 실패를 원하신다니요.?
이 질문을 들었을 때 나의 즉각적인 반응은 이러했다.
그리고 하나님은 곧 내게 예수님의 실패를 보여주셨다.
예수님의 죽으심은 그 당시 사람들에게 실패였다.
유대인들이 그토록 기다리던 메시야였고,
로마인들에게는 유대인의 왕이라 칭함받던 예수님이셨다.
그랬던 예수님이 죽으셨다.
로마인들의 고통과 억압에서 그들을 자유케 하며 구원하실꺼라 기대하였던
예수님의 죽음은 그들에게 충격이었을 것이다.
그것도 가장 잔혹하고 고통스런 형벌인 십자가에서의 죽음은
그들에게 분명히 예수님의 실패였다.
그러나
그것은 분명히 사람들에게 실패였을지 몰라도,
그것은 분명히 하나님의 뜻이었고, 계획이었고, 부활의 승리를 위한 과정이었다.
하나님께서 내게 실패를 원하신다면,
그 가운데 내 자아의 철저한 실패감과 좌절감을 느끼기를 원하신다면,
그 가운데 나로 하나님의 분명한 뜻과 계획을 알게 하시기 원하신다면,
그 가운데 하나님에 대한 100% 신뢰를 위해 성화의 과정으로 삼기 원하신다면...
네, 주님.
그리하겠습니다.
실패하겠습니다.
실패를 두려워하지 않겠습니다.
그러나, 주님.
나로 이 가운데
하나님으로만 만족할 수 있도록,
하나님을 온전히 신뢰할 수 있도록,
하나님의 분명한 약속을 붙잡고 인내할 수 있도록,
하나님의 뜻과 계획에 자원하는 마음으로 순종할 수 있도록,
나에게 믿음에 믿음을 더하여 주옵소서.
Faith is not just an intellectual assent to doctrines.
Faith is an affectional embrace of the Savior for my deepest longings.
내 형제들아 너희가 여러가지 시험을 당하거든 온전히 기쁘게 여기라.
이는 너희 믿음의 시련이 인내를 만들어 내는 줄 너희가 앎이라.
인내를 온전히 이루라 이는 너희로 온전하고 구비하며 조금도 부족함이 없게 하려 함이라. (약 1:2-4)
Count it all joy, my brothers, when you meet trials of various kinds,
for you know that testing of your faith produces steadfastness.
And let steadfastness have its full effect, that you may be perfect and complete, lacking in nothi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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You Alone Can Rescue :: 2010/01/19 13:15
Matt Redman - You Alone Can Rescue.
Who, oh Lord, could save themselves,
Their own soul could heal?
Our shame was deeper than the sea
Your grace is deeper still
You alone can rescue, You alone can save
You alone can lift us from the grave
You came down to find us, led us out of death
To You alone belongs the highest praise
You, oh Lord, have made a way
The great divide You heal
For when our hearts were far away
Your love went further still
Yes, your love goes further still
You alone can rescue, You alone can save
You alone can lift us from the grave
You came down to find us, led us out of death
To You alone belongs the highest praise
You alone
We lift up our eyes, lift up our eyes
You’re the Giver of Life
Their own soul could heal?
Our shame was deeper than the sea
Your grace is deeper still
You alone can rescue, You alone can save
You alone can lift us from the grave
You came down to find us, led us out of death
To You alone belongs the highest praise
You, oh Lord, have made a way
The great divide You heal
For when our hearts were far away
Your love went further still
Yes, your love goes further still
You alone can rescue, You alone can save
You alone can lift us from the grave
You came down to find us, led us out of death
To You alone belongs the highest praise
You alone
We lift up our eyes, lift up our eyes
You’re the Giver of Life
You alone can rescue, You alone can save
You alone can lift us from the grave
You came down to find us, led us out of death
To You alone belongs the highest praise
To You alone.
네, 오직 주님만이 우리의 유일한 구원자이십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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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is Presence :: 2010/01/18 02:40
시편을 묵상하며.
다윗은 자신의 감정을 참 적나라하게 하나님께 드러냄을 볼 수 있었다.
자신의 분노, 불평, 원망, 답답함 등 모든 감정들을 하나님께 토설했다.
때로는 하나님 앞에 따지는 듯 해보이는 모습에도,
그가 정말 간절히 구하는 것은 "하나님의 임재" 였다.
자신에게 닥친 모든 상황에서,
그의 필요를 구한 것이 아니었다.
그가 구한 것은 오직 하나님의 임재하심이었다.
그리고 하나님의 임재하심을 경험하며
그 분께 감사하고, 찬양하고, 예배했다.
이번 한 주내내
육신의 고통이 나를 힘들게 하여
밤마다 신음하며 아픔 가운데 눈물 흘려도,
단지 내 살에, 내 뼈에 평안함이 없음으로 인해 회복을 간구했다.
그러나.
문제는 육신의 질병이 아니다.
내 마음에 평안함이 없고,
내 영혼이 썩어 악취가 나고,
내 눈의 빛이 나를 떠나가며,
내 안에 하나님을 갈망함을 없다는 것.
그것이 문제다.
나의 상황에 따른 필요가 아닌,
나의 필요는 언제나 오직 하나님의 임재뿐이다.
주님, 나를 구원하여 주세요.
주님을 기다립니다.
강하고 담대하게 주님을 기다립니다.
"내가 여호와께 바라는 한 가지 일 그것을 구하리니
곧 내가 내 평생에 여호와의 집에 살면서
여호와의 아름다움을 바라보며
그의 성전에서 사모하는 그것이라" (시 27: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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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들. :: 2010/01/14 13:19

장민우, 최정현, 나, 그리고 주낙원.
대학교 때부터.. 벌써 8년이란 시간을 이 친구들과 함께 했다.
이제는 미국에 와서 각자의 미래를 준비하고 있다가
8시간, 12시간 걸리는 거리를 달려
이번 Passion에서 다함께 만났다.
소중한 친구들.
남자들이라 모 항상 그렇듯
우선 만나면 서로 갈구기에 바쁘지만, ㅎㅎ
그만큼 서로를 잘 알고 잘 이해하고 있기 때문에..
서운함이나 섭섭함은 없다.
그게 우정의 표현인가? ㅋ
친구들아, 사랑한다.
우리들의 삶, 우정을 ART로 만들기를 소망해보며..
P.S. 김요한, 너만 없다. 잘하자. 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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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lorious! :: 2010/01/12 14: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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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gister 후 받을 수 있는 Name Tag 과 안내지, 그룹을 표시해주는 팔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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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략 6만명이 모여서 2그룹으로 나눠서 큰 홀 두 곳에서 동시에 예배를 드렸다.

오른쪽부터 Passion의 창시자 Louie Giglio, Chris Tomlin, Hillsong United의 Joel Houston, Matt Redman.

John Piper의 Sermon. 그의 설교는 정말 탁월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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맛있는 점심. 그리고 Atlanta의 가난한 사람들을 위해 Passion에 참석한 사람들이 준비한 수건과 양말 더미.

Glorious His name!!
내가 공부하는 곳, Southern Seminary... Louisville, Kentucky는 참 조용하다.
미국에서 시골이라 불리는 이 곳은 사람들도 많지 않고, 놀 곳도, 볼 곳도 거의 없다.
차 없이는 어디 갈 수도 없어서 학기가 시작하면, 정말 강의실, 도서관, 집, 교회가 내가 가는 장소의 전부다.
한국인이다보니 미국 사회에 관심도 많이 없고,
한국과는 거리가 멀어 생활권이 아니다보니 또 관심이 가지 않는다.
공부에 치여 살다보면 이렇게 한국도, 미국도 아무 곳에도 관심없이 살게 된다.
공부에 집중하니까 좋다고 생각했었다.
수도원 같은 이 곳에서 하나님과 더 깊은 만남은 가져야 겠다고 생각했다.
나의 활동적인 성격과는 반대되는 부분이 많이 있었지만,
나에게 필요한 부분이라고 생각했다.
물론 그렇다.
하지만 그 가운데 내가 놓치고 있던 부분을.
이 곳 Passion Conference에서 다시 보게 되었다.
내가 이곳에서 준비하는 이유를.
내가 미래에 만나야 할 사람들을.
내가 한국 교회를 위해 해야할 일들을.
나는 그저 조용히, 아무 흔적없이, 평범하게 살아갈 사람이 아니다.
나에겐 꿈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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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assion Conference 2010 :: 2010/01/01 00:14
Passion Conference 2010
January 2-5, 2010 in Atlanta
하나님께서 모두 예비하신 집회.
3년마다 한번씩 열리는 이 집회에 너무나 가고 싶었는데,
비용이 너무 비싸서 Scholarship을 신청했었다.
정말 "하나님의 은혜"로
모든 Conference Fee 와 숙박료를 무료로 제공받게 되었다.
John Piper, Andy Stanley, Matt Redman, Chris Tomlin,
Charlie Hall, Hillsong United, David Crowder Band ...
하나님이 사용하시는 귀한 사람들을 만나고,
그 사람들을 통해 일하시는 하나님을 만나게 될 시간들이 기대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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